사주
쉼터
판매상품 (1)
※ 상기 이미지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멈출 수 없을 정도의 끌림을 주는 사람은
내가 가진 편견 중
하나를 굳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진 편견 중
하나라도 깨뜨려 주는 사람이더라
당신도 나를 멈출 수 없기를
— 이병률, 『끌림』 중에서
내가 선택한 배우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떨어진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말투와 성향, 분위기와 가치관 중 무엇인가에 내가 끌렸기 때문에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내가 가진 글자에서 시작됐다’는 말은 모든 일이 사주 탓이라는 뜻도, 상대방의 명백한 잘못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폭력이나 기만은 분명히 가해자의 책임입니다.
다만 관계가 반복해서 나를 힘들게 한다면, 상대방만 바라보기 전에 내가 무엇에 끌렸고 무엇을 외면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때때로 내가 가진 모습과 닮은 부분을 보여줍니다.
유난히 싫은 사람도 감정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크기와 표현 방식은 다르더라도 인정하기 싫은 비슷한 면이 내 안에도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은 그것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거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자와의 갈등은 단순히 사람을 잘못 선택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살아오며 쌓아 온 “이건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기준과, 배우자가 쌓아 온 기준이 서로 충돌하며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것을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가 충돌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다행히 소프트웨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정하고, 초기화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사주를 이해하면 서로의 작동 방식과 타고난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혼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잘 살게 되면 이전 배우자만이 문제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 안의 선택 기준과 관계의 습관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모습만 다른 비슷한 관계를 다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명리학적으로도 두 사람의 갈등이 언제나 궁합 자체의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대운과 세운이 엇갈리면서 한동안 관계가 유난히 힘들어질 수도 있고, 그 시기를 지나며 다시 안정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다른 장점을 존중하며 함께 움직인다면, 혼자일 때보다 삶을 견디는 힘이 커질 수 있습니다.
내가 힘든 시기에 배우자의 운이 받쳐 줄 수도 있고, 두 사람이 모두 힘든 시기에는 자녀나 가족의 좋은 흐름이 버팀목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무기와 가능성이 그만큼 늘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 앞의 배우자는 내가 옳다고 믿어 온 편견과 아집을 깨뜨리며,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도록 돕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배운 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관념은 교육과 자라온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그 관념 자체가 곧 ‘나’는 아닙니다. 그래서 익숙한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믿지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합니다.
저 역시 사주를 간명하는 사람으로서, 명리 지식으로 사람을 단정하거나 편견을 갖는 일을 가장 먼저 경계하려 합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