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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세월 앞에서 나는 아직도 막내딸이다.
오늘은 할머니의 제삿날이다.
사진 속 정갈하게 차려진 제사상은 올해도 어김없이 엄마가 손수 준비하신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는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할머니의 제사상을 차리셨다. 설날과 추석에도 정성을 다하셨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그 모든 수고로움을 묵묵히 감당하셨다.
우리 가족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오랜 세월 조상을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왔다. 부모님에게 제사는 단순한 의식을 넘어 먼저 떠난 가족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명절이면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제삿날이면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 익숙한 풍경 뒤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사랑이 쌓여 있었는지를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올해 아빠는 여든, 엄마는 일흔다섯이 되셨다.
두 분은 지금도 할머니가 계신 납골당을 자주 찾아가신다. 그 모습을 보면 예전에 외가의 산소를 찾아가던 날들이 떠오른다.
당시 엄마는 성묘를 갈 때마다 직접 낫을 들고 산소 주변의 풀을 조심스럽게 베셨다.
"엄마, 그냥 사람 쓰면 되잖아. 왜 힘들게 직접 해?"
그때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이런 건 직접 해야 하는 거야."
그 말씀이 이제는 조금 이해된다.
엄마에게 그것은 단순히 풀을 베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떠나간 사람에게 살아 있는 사람이 전할 수 있는 정성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평생 부모님을 향한 도리를 지켜오신 두 분이 정작 자식들에게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다.
"우리가 죽으면 절대 제사 지내지 마라. 너희 힘들게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냥 가족끼리 모여서 맛있는 거나 먹어라."
엄마 아빠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으면서 자식들에게는 그 수고로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예전에는 웃으며 넘겼을 말인데 이제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아직도 엄마 아빠 앞에서는 철없는 막내딸인데 두 분은 어느새 당신들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신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이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날만큼은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모범생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군 생활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책임감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내 인생만큼은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나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20대 후반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사람을 프로포즈를 앞두고 불과 일주일 전에 사고로 떠나보냈다.
어제까지 함께 웃으며 앞날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갔지만 나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버렸다.
물론 같은 아픔을 겪었더라도 누군가는 그 상실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무너졌고 어렵게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다가도 번번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일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너진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한때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믿었던 내가 정작 내 삶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내 언니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고 친한 친구들은 안정된 직장에서 경력을 쌓으며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움과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그들이 잘되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 역시 그들과 나란히 미래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혼자만 너무 멀리 뒤처져버린 것 같은 현실이 슬프고 서글펐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만 잃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그려왔던 미래와 삶의 방향,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 잃어버렸던 것 같다.
어떻게든 평온을 찾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위안을 구하기도 했다. 잠시 편안해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무너졌고 그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과 경제적인 실수를 반복했다.
어디에든 매달리고 싶었다.
결국 내가 감당하지 못했던 무게는 부모님께로 향했다.두 분은 내가 몇 번이나 넘어지는 동안 그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당신들의 것을 내어주셨다.
평생 아끼고 모아오신 것들, 조금 더 편안한 노후를 위해 남겨두셨어야 할 것들을 나를 위해 쓰셔야 했다.
나는 내 슬픔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부모님은 아파하는 딸을 지켜보는 고통에 경제적인 부담까지 감당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추락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그곳에서도 끝내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릿하다.
내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더라면 두 분의 노후는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모든 것을 직접 겪고 나서야 깨닫는 사람일까.
왜 누군가의 충고를 들을 때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꼭 내 방식대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나서야 그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는 것일까.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 시절을 무조건 후회하거나 반대로 아팠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지도 않다.
슬픔은 슬픔대로 인정하되 그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에 대한 책임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또 그때의 나를 그저 나약하고 어리석었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남들보다 오래 걸렸고 수없이 넘어졌지만 나는 어떻게든 다시 살아보려고 애썼던 사람이기도 하니까.
사람이 무너지는 데에는 한순간이면 충분할지 몰라도 다시 일어서는 데에는 때로 인생의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거창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내 삶을 살아내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는 별일 아닌 듯한 문제에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끝난 인연을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머리로는 모든 걸 이해하면서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 정신 차리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 역시 그런 말들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텨내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사람마다 아픔을 견디는 속도도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다는 사실을 내 삶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꽤 이성적이고 단호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쩌면 내가 감정보다는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고 때로는 듣기 좋은 위로보다 필요한 말을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굉장히 오랜 시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팠고 감정에 깊이 흔들렸던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다.
머리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같은 자리를 맴돌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기도 했던 사람도 나였다.
그렇기에 상담할 때마다 공감과 현실적인 조언 사이에서 고민한다.
무조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위로는 아닐 것이고그렇다고 옳은 말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아픔을 가볍게 다루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때로 단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상처 입은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 수 있는지 알기에 조금이라도 덜 헤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연을 들을 때 내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만의 사정과 감정을 먼저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내 말투가 조금은 단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차가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언젠가는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또 그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며 지난 시간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만 이미 지나온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며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게 되었다.
절을 하시던 아빠가 이제는 무릎이 아프다고 하셨다.
언제까지 이렇게 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평생 당연하게 해오셨던 일조차 이제는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아빠가 할머니께 비신 소원은 당신의 건강이나 편안한 노후가 아니었다.
그저 우리 자손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별일 없이 잘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소원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유독 나를 걱정하셨다.
험난한 세상에서 내 딸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셨기에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마음 놓을 수 없는 딸인가 보다.
나는 이미 내 삶을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엄마의 기도 속에서는 여전히 세상이 걱정되는 막내딸이었다.
아빠는 아픈 무릎으로 절을 하시며 자손들의 평안을 빌고 엄마는 평생 정성껏 준비해 온 제사상 앞에서 딸의 앞날을 걱정하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부모님이 나를 위해 걱정하는 시간보다 나로 인해 마음 편히 웃으시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드릴 수 있을까.
어쩌면 효도라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보다 부모님이 더 이상 나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으시도록 내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잘 살아내고 싶다.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아니라 내 곁에 있을 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깨닫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깨달은 만큼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다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함께 밥을 먹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별것 아닌 일에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하고, 아빠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두 분이 좋아하시는 것들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는 딸이 되고 싶다.
오늘도 엄마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리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비로소 깨닫는다.
엄마 아빠가 평생 지켜오신 것은 단순히 제사라는 형식이 아니라 누군가를 잊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정작 당신들의 마지막에는 자식들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오늘따라 엄마 아빠의 흰머리와 깊어진 주름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그 주름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세월과 걱정,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을까.
내가 조금 늦게 철이 들어서 미안하다.
이제야 두 분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는 딸이라서 미안하다.그래도 남은 시간을 후회로만 채우지는 않고 싶다.
이제는 내 삶을 잘 살아내면서 두 분께 마음 편한 날들을 더 많이 선물해 드리고 싶다.
오늘 엄마 아빠가 우리를 위해 소원을 비셨듯 나도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두 분이 자식 걱정보다 당신들의 행복을 더 많이 생각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내 부모님이 되어주셔서 참 감사하다.
그리고 아직도 두 분을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엄마를 부르면 대답해 주시고 아빠를 찾으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세월이 조금만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내가 아직 못다 한 효도를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만 더 오래, 엄마 아빠의 막내딸로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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